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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알랭드 보통 불안 을 읽고 든 생각

by 어제보다오늘은 2021. 1. 5.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뜩 불안을 느낀다. 

나이 24세 2021년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마이스터고라는 기술고등학교에서 졸업하여 정말 운 좋게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기업에 입사한 지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작년 연봉이 6500만원이였다.  내 나이 24세 나에게 이 돈은 벅차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을 뿐더러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 취업이 확정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뭘 원하는지를 모르니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가서 무슨 책을 읽어볼까 고민하던중 불안이라는 제목이 끌려 30분 정도 읽어보았다. 

나의 불안의 요인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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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나는 관심에 목말라 있는걸까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내가 결정되는 걸까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운동해서 몸을 만드는것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녔을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취중진담에 말하는것도 나에게 관심을 달라고 하는 거였나

내가 직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돈에 대한 걱정이 아닌 직업이 주는 명함에서 오는 관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리적 형벌이라면 ,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물질적인 것을 더욱 가지려 하는 욕심이 우리를 자유의 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얻게 된 사실이다.

우리는 더 가지려 한다. 왜 그럴까? 어릴 적 나는 한 번도 최신형 핸드폰을 사용해 본적이 없다. 매번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용하고는 했는데 그것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다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최신형 핸드폰과 비교했을 때 그저 단순한 전자기 기였을 뿐임에도 다르다는 사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깐..)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해서 부모님께서 브랜드 있는 옷을 사줘본 적이 몇 번 없어 나는 그 브랜드 패딩을 입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게 나를 더욱 가치 없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물질적 비교에서 오는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것. 그것의 시작은 내가 타인과 물직적 비교를 시작할 때부터이다.

 

타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sns를 보다 보면 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나의 생활과 그들을 비교하게 되고 그들의 물건과 나의 물건을 보고 나의 보잘것없음에 불안과 분노를 거쳐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나도 지독하게 타인과 비교한다. 정말이지 그만둘 줄을 모른다. 이 비교는 끝이 없고 그 끝은 나의 패배로 끝난다. 

그래서 피터슨 교수가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고 하나보다. 

그 과정에서 나를 잃어버린 게 아녔을까??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상당히 돈을 많이 주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주식을 엄청 많이 하고 도박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욕망은 어디까지 일까 

어떤 사람은 돈에 정말로 욕심이 많다. 한 푼도 잘 못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본인이 손해를 보았을 때는 엄청나게 화를 내곤 한다. 그리고 투자에 관심이 많다. 뭐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상황에서 1억을 더 번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1퍼센트도 바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더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은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었다가 다시 큰돈을 벌게 되었는데 그 사람에게 변한 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의 자랑밖에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에 가서 부인이 돈을 얼마 쓴다는 둥 결국 그분의 삶은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다 그저 똑같이 회사를 다니고 자녀에 대한 걱정을 나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투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돈을 적게 버는 것은 죄다. 슬픔이고 배고픔이다. 

너희들이 배고픔을 아느냐 가난했을 때 사람이 겪는 수치와 수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고 그분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이용해서 경제적인 부를 이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투자를 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 

맞는 이야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도 투자를 하던 도중 어떤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걸까? 목적을 잃어버렸다. 길을 잃어버렸고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알지도 못한 체 돈을 많이 벌면 나의 삶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 욕망의 끝은 있을까? 

내가 명품 신발을 신는다고 저 사람보다 1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건 사람차이겠지만 나는 결코 그런걸로 행복해 질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만두었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내가 행복함을 얻을 수 있는 척도가 돈인가??? 

나는 어떤 상황에서 행복감을 얻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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